예술가들은 보통 가난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인생 동반자인 헌신적인 아내는 예술가의 영감을 지지하면서 함께 생활의 어려움을 이겨내곤 합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동화 속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의 레드카펫을 밟으며 작품상, 감독상, 국제장편영화상, 각본상 등 4개 부문을 거머쥔 봉준호 감독도 20년 전에는 가난한 영화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와도 변함 없이 감독을 지지하는 첫 번째 독자이자 사랑하는 아내인 정선영 시나리오 작가가 그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봉준호 감독은 각본상 수상자로 선정되어 처음으로 아카데미 시상식 무대에 오르게 된 순간, 아내에게 고마움을 전했습니다. “언제나 많은 영감을 주는 아내에게 감사합니다”라며 아내에게 전한 말이었습니다.
봉 감독이 아내로부터 영감을 받기 시작한 것은 대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대학에서 영화 동아리를 통해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영화라는 공감대를 통해 서로의 마음을 이어갔는데,
봉 감독은 아내와의 연애를 회상하며 “영화동아리에서 영화광인 아내를 만났다. 아내는 나의 첫 번째 독자였다. 대본을 완성하고 그녀에게 보여줄 때마다 너무 두려웠다”라고 전했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든든한 지원군으로 알려진 아내 정선영 작가는 결혼 전인 1994년에 개봉한 단편영화 ‘지리멸렬’에서 편집 스태프로 참여하며 봉 감독의 영화 작업을 도왔습니다.
결혼 후에도 봉 감독의 활동을 물심양면으로 지지한 정선영 작가는, 봉 감독과 함께 시나리오 작가와 조감독으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1997년에는 개봉작 ‘모텔선인장’의 조감독을 맡았을 때, 봉 감독은 생활비가 매우 부족했습니다. 1년 10개월 동안 일하면서 제작사에서 받은 돈이 총 450만 원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생활이 매우 어려웠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봉 감독은 “1년 치 생활비가 남았으니 마지막으로 1년만 더 올인해 보자”는 의지를 내비치고, 아내는 “못먹어도 고!”라며 남편을 지켜봤습니다.


그 결과, 아내의 지지 덕분에 봉 감독은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를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이 영화의 배경이 된 복도식 아파트는 실제로 봉 감독과 아내의 신혼집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플란다스의 개’는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다음 작품을 준비할 여유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봉 감독만의 특유의 화법이 충무로에서 눈길을 끌어서 다음 작품인 ‘살인의 추억’이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이 작품의 흥행으로 봉 감독은 더 이상 가난한 예술가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영화 ‘괴물’을 제작할 때에는 CG에 드는 비용 때문에 투자자를 찾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봉 감독은 그만 자살까지 고려했을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는데, 그를 지켜봐준 것은 아내였습니다.


그리고 쌀을 얻어먹던 가난한 예술가의 아내가, 20여 년 후 아카데미 시상식 현장에서 작품상을 수상하는 남편을 축하하며 오열했습니다.
아마도 지난 세월이 그들에게 쉬운 시간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봉 감독이 1998년에 “1년만 더 달라”는 말에 대해 “못 먹어도 고!”라고 대답하지 않았다면, 아카데미 시상식 무대 위의 봉준호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스카의 영광 중 5할은 정선영 작가의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