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부를 가졌지만, 예전부터 엄청 가난하게 자라, 학원비를 벌려고 카페알바를 하다 배우의 길로 들엇헌 배우가 있습니다.
그는 “대한민국에서 보고 있을 국민 여러분과 친구, 가족, 소중한 팬들과 기쁨을 나누겠다”라는 소감을 통해 수상에 대한 기쁨을 전하며 아시아 국적 최초로 남우주연상 수상이란 쾌거를 안았는데요.
이정재의 데뷔는 어땠을까요?
그는 어릴 적 집안 형편이 그리 좋지 못했고, 몸이 불편한 형 때문에 실질적인 장남이었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물건이 가압류 당한 경험도 있고, 단칸방 생활도 했었다면 유복했을 것만 같은 어릴 시절과는 거리가 있었죠.


과거 그는 친형이 자폐증을 앓고 있었고 제때 등록금을 내지 못해 힘들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내 손길이 필요한 형 대신 장남 역할을 해야 했고, 살림 거드는 딸 역할도 해야 했기 때문에 일찍 철이 들었다”라고 고백했죠.
지금은 대배우로 성장했지만 원래 꿈은 건축인테리어 쪽이나 미술 관련 계통이었습니다.
고교 시절 미술적 재능을 알아본 교사의 권유로 미술 학원을 무료로 다니며 입시 교육을 받기도 했다고 전해지는데요.


미대 진학을 꿈꾸었으나 성적이 모자라 떨어졌고, 이후 직업학교(아트스쿨)에 다니며 인테리어와 건축을 공부했습니다.
그때 학원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그게 바로 압구정동의 서빙이었는데요.
소문에 의하면 그 카페는 정우성, 이정재, 구본승이 차례로 알바생으로 있었다는 전설의 캐스팅 성지이기도 했다는군요. 알바비 보다 모델비가 더 컸던 탓에 이정재는 매니저의 제안에 승낙했다고 합니다.
먼저 모델업계에 발을 담그며 1993년 크런키 초콜릿 광고를 찍으며 데뷔하게 되었죠. 이후 이미지를 반영한 ‘모래시계’에서 재희 역의 성공으로 스타덤에 안게 되었는데요.

배우를 넘어 영화 <헌트>로 감독까지 우뚝 선 이정재는 영화 <젊은 남자>로 스크린 데뷔를 했습니다.
<젊은 남자>는 스타가 되기 위해 질주하는 모델 지망생 청년의 꿈과 사랑을 그린 영화로, 시속 180km의 욕망을 멈출 수 없었던 X세대 청춘의 라스트 드라이브를 스타일리시하게 담은 뉴트로 시네마인데요.
<젊은 남자>가 리마스터링되어 재개봉을 앞두고 있는데요. 당시 오렌지족으로 불렸던 청춘의 이정재 뿐만 아니라, 신은경, 이응경, 김보연과 더불어 올해로 사망 3주기를 맞은 姑전미선 배우의 그리운 신인 시절 모습까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정재 TMI
도회적으로 잘생긴 외모와 세련된 스타일 그리고 초중고 학력 때문에 어릴 때부터 강남 부잣집 도련님으로 자랐을 것 같지만 실은 가난한 환경에서 성장했습니다. SBS 힐링캠프에 출연해 밝힌 바에 따르면 양친은 모두 부유한 환경에서 성장했습니다.
외가 쪽은 지방에서 양조장 몇 개를 경영했고 친가 쪽은 의사 집안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본인은 국민학교 재학 이후로는 유복했던 기억이 없다고 합니다. 의사셨던 조부가 연달아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마한 것이 집안의 뿌리를 흔드는 원인이었다고 합니다.

가압류를 당하기도 하고, 이사를 다니면서 화장실이 바깥에 딸려 있는 단칸방에서 식구가 함께 생활했고 때로는 가족이 서로 흩어져 살아야 할 때도 있었다고.
고등학교 재학 시절엔 등록금을 내지 못해서 반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매를 맞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어릴 때 상당히 왜소해서 “소소”라는 아명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게다가 (힐링캠프에서 처음 밝힌 사실인데)자폐성 장애인인 친형이 있는 비장애형제입니다.
이제까지 많은 매체에서 ‘외아들’이나 ‘무녀독남’ 등으로 설명되고는 했기 때문에 몸이 불편한 형이 있다는 것을 밝힌 그의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충격과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데뷔 후 처음 밝힌 어려운 가정사에 그의 팬들은 물론이고 일반 시청자들도 많이들 놀랐는데, 담담하게 ‘내 형이니까 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이것이 나와 내 가족의 삶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하는 모습이 보는 사람의 마음을 더 안타깝게 했다는 평입니다.
이외에도 IMF가 닥쳤을 때 소속되어 있던 소속사가 부도가 나면서 빚을 대신 짊어지게 되고 투자했던 부동산에서 아파트 중도금을 미납하게 되는 등 성공가도를 달린 후에도 금전적으로 힘든 일이 있었습니다.
차비가 없어 밖에도 나가지 못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힐링캠프에서 강우석 감독에게 영화 세 작품에 출연하는 개런티를 미리 받았던 덕에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었고 그래서 찍은 영화가 《이재수의 난》, 《순애보》, 《선물》이다. 고생 하나 하지 않고 자랐을 것 같지만 여러모로 힘든 면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본인은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을 좋아하진 않습니다. 2008년에 아레나와 한 인터뷰를 보면 “세상 살면서 그 정도로 안 힘들어본 사람 정말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유독 자기만 힘들었던 것처럼 과거를 끄집어내 말하면서 동정표를 유도하는 이들이 있다. 개인적으로 썩 좋아하진 않습니다.
누구에게나 개인적인 스토리는 있고 그 강도는 지극히 주관적인 것 아니겠나.” 이제까지 친형에 대해서 함구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읽힐 수 있습나다. 아무튼, 고생하며 살아온 것 에 비하면 참으로 평온하고 맑은 소년 같은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고생과 별개로 성격이 좋아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습니다. 고등학교때 체력단련반이어서 학교 축제에서 보디빌딩을 선보여 환호성이 터졌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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