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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못하는 놈, 소문났죠” 10년간 수입 120만원 벌고, 탤런트 데뷔했다가 욕만 먹었다는 연기파 배우

연극배우 출신이라고 하면 으레 ‘연기파 배우’라는 기대감이 생깁니다. 스타성이 가미되는 매체 연기와 달리 무대에서는 오롯이 연기력만으로 승부를 봐야 하기 때문에 무대에서 인정받은 배우라면 연기력 하나만큼은 증명 됐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무대 연기의 경험이 매체 연기에서 독이 되는 경우도 있는데요. 연극계를 주름잡고 기대감을 한 몸에 받으며 TV 드라마에 진출했지만 무대 발성을 하는 바람에 순식간에 ‘연기 못하는 애’로 찍혔다는 주인공은 배우 성동일입니다.

연기는 물론 예능까지 섭렵한 지금의 성동일을 보면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끼를 가졌을 거라고 예상되는데요. 실제 성동일의 유년기는 끼를 펼치기는커녕 일상생활조차 어려울 정도로 불우한 환경이었습니다.

사생아로 태어난 성동일은 10살까지 호적도 없이 살면서 그저 동네 어른들이 “종훈이”라고 부르던 것을 이름으로 알고 지냈습니다. 전국으로 생선 장사를 다니는 어머니는 집에 있는 날이 1년 중 손꼽을 정도였고 대부분은 8살 터울의 누나와 단둘이 생활해야 했지요.

이후 학교 입학을 위해 성동일은 10살 때 처음 아버지를 만나 호적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자식 때문에 억지로 살림을 합친 아버지는 결혼생활에 불만을 품고 가정폭력을 휘둘렀는데요.

당시에 대해 성동일은 “보다 못해 동네 사람들이 피신시켰을 정도”라며 어린 시절 꿈이 “빨리 나이 들어서 나가 살고 싶다”였다고 고백했습니다.

어린 시절 장래희망 대신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라는 꿈을 가졌다는 성동일은 20대가 되어서야 뒤늦게 대학로에서 연극을 접한 후 난생처음으로 ‘배우’라는 꿈을 욕심냈습니다.

“모르는 사람들이 나한테 이런 관심을 가져준다는 것에 놀랐다”는 성동일은 “하다못해 우리 부모님도 관심이 없었는데”라며 돈이 없어도 될 정도로 무대 위에서 짜릿한 전율을 느낀 경험을 회상했습니다.

다만 몇 달 동안 준비해서 무대에 한 작품을 올리고 나면 수중에 들어오는 돈은 3~5만 원 정도였고, 10년 동안 무대에 서면서 번 돈은 120만 원이 전부였습니다.

결국 성동일은 더 이상 어머니를 고생시키면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다른 길을 찾던 중이었는데요.

마침 뮤지컬 ‘우리로 서는 소리’에 함께 출연한 배우 최진영이 SBS개국 소식을 전하면서 탤런트 시험을 권유한 덕분에 연극 공연의 팸플릿에 실린 사진을 잘라 이력서로 제출하면서 공채 탤런트가 되었습니다.

1991년 공채 탤런트가 된 성동일은 KBS의 장동건, MBC의 이병헌과 함께 미소년 트로이카로 불리며 신인 유망주로 꼽혔습니다. 덕분에 첫 드라마에 주연 자리를 따내며 파격 행보를 걸었는데요.

다만 연극 발성을 지우지 못해 연기를 못한다는 낙인이 찍히면서 해당 배역이 사망하면서 중도 하차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이후 ‘연기 못하는 애’라는 소문이 나는 바람에 캐스팅이 급격히 줄어든 성동일은 주연급에서 단역으로 급하락했습니다.

1998년 드라마 ‘은실이’에서 맡은 ‘양정팔’역 역시 초반 3회분 출연이 예정된 단역이었고, 이때 성동일은 ‘어차피 짧게 나오는 거 TV에서 아예 잘려도 좋으니 할 수 있는 대로 다 해보자’라는 마음이었다고.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캐릭터를 위해 동대문에 가서 직접 빨간 양말을 구입할 정도로 열정을 보인 성동일은 특유의 사투리 연기와 코믹 캐릭터로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양정팔 역할 덕분에 첫 전성기를 맞이한 성동일은 트로트 앨범까지 발매하며 승승장구했고 CF를 찍으며 처음으로 제대로 된 수익을 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상승세를 타던 1999년 성동일은 드라마 ‘유정’에서 재벌 2세 역을 맡았다가 코믹 이미지 때문에 작품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또 한 번 중도하차의 아픔을 겪었는데요.

게다가 당시 성동일은 광고출연료 등으로 처음 큰돈을 손에 쥐면서 보다 안정적인 수입원을 창출하고 싶었고 이때 함께 사업을 해보자고 제안한 지인의 말에 소갈비 식당을 개업했다가 사기를 당하면서 무려 5억 원이 넘는 빚을 떠안았습니다.

배우로서 막 날개를 펼치려던 시기에 사기를 당하면서 성동일은 크게 낙담한 상황이었고 그때 성동일에게 평생의 인연이자 은인이 찾아왔습니다.

바람을 쐴 겸 울산에 있는 지인을 만나러 간 자리에서 현재의 아내 박경혜를 만난 것. 성동일은 국밥집에서 처음 만난 아내가 냅킨을 깔고 수저를 놓는 모습을 보고 첫눈에 반했습니다.

이후 성동일은 드라마 ‘유리구두’를 촬영하면서 시간이 나는 대로 울산으로 갔습니다. 촬영이 없는 날은 물론이고 촬영이 있는 날도 서울에서 촬영이 마치기만 하면 울산으로 출근도장을 찍었지요.

성동일의 적극적인 대시로 연인이 된 두 사람은 2년여의 연애 끝에 두 사람은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고 양가 부모님께 인사도 드렸습니다.

당시 성동일은 37세, 아내는 26세로 어린 나이였지만 고3 때 모친을 잃고 아버지마저 간경화로 위독한 상황이라 성동일은 아내에게 하루빨리 가족의 울타리를 만들어주고 싶었는데요. 결혼을 서둘렀음에도 불구하고 상견례 뒤 보름 만에 장인어른이 세상을 떠나면서 두 사람은 식장에 들어서지 못했고 2004년 살림을 합치면서 가족이 되었습니다.

결혼 후에도 여전히 5억 원의 빚을 갚으나 빠듯했던 성동일은 코믹 이미지 덕분에 예능 섭외가 들어오기도 했지만 ‘배우로서 길’을 고수하기 위해 거절했습니다.

이에 성동일의 누나는 “네 집사람 감자탕 집에서 설거지하는 거 아느냐”라고 알려주었는데요. 성동일의 아내는 이미 아침방송에 출연해 얼굴이 알려진 바람에 배우 남편에게 피해가 갈까 봐 식당 주방에서 설거지하는 일을 하고 있었던 것.

이를 알게 된 성동일은 ‘난 연기자도 가장도 아무것도 아니구나’라고 반성하며 생계형 예능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때맞춰 드라마 ‘추노’를 통해 연기력을 인정받기도 한 성동일은 예능프로 ‘아빠어디가’를 통해 대중들과 더욱 가까워졌고 이후 드라마 ‘응답하라’시리즈를 통해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성동일의 아내가 성동일보다 먼저 시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돌아가시기 3일 전 두 아이를 데려가 인사를 드렸고 남편의 마음이 어떻지 몰라 말하지 않고 있었던 것.

그리고 발인이 끝난 저녁에 성동일에게 그 사실을 전하면서 한 가지 부탁을 덧붙였는데, 바로 시아버지의 제사를 모실 수 있게 허락해 달라고 말했지요. 실제로 이후 성동일 아버지의 제사는 지금까지 아내가 지내고 있다고 하네요.

촬영 끝나고 집에 들어가서 아이들과 아내가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면 ‘난 정말 행복하구나’라는 생각이 든다는 성동일.

연극 활동까지 합해 40년의 연기 경력을 자랑하는 그가 앞으로 인생 목표에 대해 “연기 잘하는 연기자, 성격 좋은 선배 후배 성동일이 아니라, 정말 괜찮은 남편, 아빠라는 말을 제일 듣고 싶다”라고 밝힌 것이 충분히 이해가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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