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은 한번도 가기 힘든 연극영화과, 심지어 두 번이나 들어가놓고도 졸업을 못한 소년이 있습니다. 재밌는건 두 번 다 이유가 다르다고 하는데요.
대체 누구고 왜 못했는지,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강동구에서 00잘하는애

김남길은 서울특별시 강동구에서 2남 중 장남으로 태어나 서울고일초등학교와 고덕중학교, 한영고등학교를 차례로 졸업하였습니다. 어릴 때는 연기자가 되겠다는 생각이 없었다고 하는데요.
TV에 나오는 연예인들의 모습을 보면 마냥 신기하기만 했고 자신과 상관없는 딴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로만 생각됐었다고 합니다.
대학교 때까지 농구선수로 활동했던 아버지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듯 본인도 운동신경이 좋아 모든 운동을 다 잘했다고 합니다. 그중 가장 좋아하는 운동은 축구. 포지션은 윙 포워드라고 합니다.
운동을 좋아해서 배우가 되지 않았다면 운동선수나 축구선수가 되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중학생 때 육상 선수였으며, 100m 비공식 기록으로 11.9초가 나왔다고 합니다. 고등학교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오기도 했다고. 그래서인지 영화 및 드라마 추격전에서 매우 빠릅니다.
초등학교 시절 활달한 성격과 훤칠한 키, 뛰어난 운동신경으로 인기가 많았다고 합니다. 한 방송에서 김남길의 학창 시절이 공개된 적 있는데, 다른 친구들에 비해 유난히 키가 크고 못하는 운동이 없어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다고 언급되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까지도 인기는 여전했다고 합니다. 동아리 활동 시간이나 학급회의 때 친구들을 리드할 정도로 할 말은 다 해야 하는 대찬 성격이었다고. 그 덕에 크리스마스와 밸런타인데이 때면 김남길에게 쏟아지는 카드가 200여 통이 넘었다고 합니다.
배우의 꿈을 갖게된 계기

그러던 중 배우의 꿈을 갖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 2학년 시절. 친구와 함께 대학로에서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리어왕>이라는 연극을 보고 깊은 감동을 느꼈고, 자신도 무대 위에서 관객들과 감정을 주고받으며 함께 호흡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연기를 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습니다. 화려한 것에 취해 막연한 꿈을 꾼다고 생각하셨다. 부모님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선 연극영화과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후 서울예술대학교 연극과에 합격했으나 집안 사정으로 자동차 정비소, 주방보조, 배달 등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가 제적당했습니다.
대학을 그만둔 이유


이후 명지전문대학 연극영상학과에 붙었지만, 연기 방식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김남길은 몸으로 직접 부딪치면서 연기를 배우겠다는 마음으로 자퇴를 선택하고 극단 ‘그리고’에 들어갔습니다.
공연장 스텝으로 시작해, 작은 배역을 하나씩 맡기 시작한 김남길은 MBC 공채 탤런트 시험을 보고 31기에 수석으로 합격했습니다.
데뷔 3년차에 독립영화 ‘후회하지 않아’에 출연한 김남길은 파격적인 동성 로맨스 연기를 보였고 마니아 팬들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후 ‘굿바이 솔로’에서 가난한 집의 가장, ‘연인’에서 조직폭력배 두목의 심복, ‘꽃 피는 봄이 오면’의 냉철한 검사 등 다양한 역할을 맡으며 연기 스펙트럼을 넓혀갔습니다.
김남길은 2009년 드라마 ‘선덕여왕’에 비담 역으로 출연해 등장과 동시에 각종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를 장악했습니다. 그의 연기력에 대한 호평이 쏟아졌고 제26회 백상예술대상에서 TV 부문 남자 신인연기상을 수상해 섭외 1순위로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이후 김남길이 출연한 드라마 ‘나쁜남자’는 일본의 공영방송 NHK에서 방영되면서 김남길을 한류스타 반열에 올려놓았습니다.
‘나쁜남자’ 촬영 종료와 동시에 입대했던 김남길은 소집해제 후 공백기가 없었던 것처럼 바로 여러 작품에 출연하였습니다.
특히 2014년 영화 ‘해적: 바다로 간 산적’에서 장사정 역으로 관객 수 860만 명의 기록을 세웠으며,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의 민태주 역으로 다시 한 번 주목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