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1970년대 영화계를 흔들었던 꼬마신랑 다들 기억하시나요? 어느덧 60대가 된 그이지만, 아직 앳된 얼굴이 남아있는데요. 최근 방송을 통해 근황을 전했습니다.
김정훈은 1961년 12월 2일 서울에서 김영희와 박정자의 3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4살 때이던 1965년 고영남 감독의 ‘이 세상 끝까지’로 데뷔했습니다.
동글동글한 귀여운 얼굴과 뛰어난 연기력으로 1960년대 ~ 70년대까지 부동의 원탑 아역배우였습니다.

꼬마 신랑 시리즈나 미워도 다시 한번으로 큰 인기를 끌었으며, 1970년 영화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에서 어린 영친왕을 연기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예쁘고 어려 보이는 얼굴과 아역으로 고정된 이미지로 배역에 한계가 생겨서 그런지 크면서 성인이 된 이후로는 인기를 끌지 못했습니다.
대만에서도 활동했습니다. 미워도 다시 한번이 동남아로 수출돼 히트하면서 필리핀 국경의 날 초대된 자리에서 대만 영화사의 섭외로 대만에서 영화를 찍어, 1973 ‘철한(鐵漢)’, 1974년 ‘대추종(大追踪)’, ‘망명천애(亡命天涯)’, 1977 ‘건륭하강남(乾隆下江男)’ 등의 영화에 출연했습니다.


1970년대 말 이승현과 함께 나온 하이틴물 고교얄개 시리즈가 실질적으로 아역으로서 마지막 영화 활동입니다.
1981년 한성화교학교를 졸업하고 1982년 국립타이완대학 사학과에 유학하여 1989년 2월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귀국하여 그해 석래명 감독의 ‘홀로서는 그날에’애 출연, 성인 연기자로 컴백했습니다.
대만에서 유학 생활을 보낸 그는 한국에 돌아온 후 연기자 생활을 다시 시작했지만 크게 성공하지 못한 채 2007년 미얀마로 이민을 갔습니다.


김정훈은 3년 전 사업으로 인해 잠시 귀국한 뒤 한국에 정착해 부모님과 살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그는 어머니가 치매를 앓고 있다고 말하며 치매를 앓는 모친과 거동이 불편한 부친을 살피며 살아가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그는 연이어 한때 한국이 너무 싫어져서 이민을 떠났다고 말했습니다. “일이 안되고 망가지면서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다. 배신감, 배반감 같은 것을 느꼈다. 그때까지도 나를 이용해 먹으려는 사람이 있었던 거다. 그러다 보니 한국이 너무 싫어졌다”고 한탄했습니다.

김정훈은 과거부터 오랜 인연이 있는 배우 박준규를 찾아갔습니다.
아역 배우 당시 김정훈은 박준규의 아버지인 박노식과 부자 사이로 출연한 바 있었습니다. 박준규는 “거의 30년 되지 않았나 싶다. 형이 아기일 때 많이 봤다”고 말했습니다.
김정훈은 얼마 전 저예산 영화를 하나 찍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현장을 오랜만에 나갔는데, 너무 기분이 좋고 흥이 나더라”며 “그래서 생각한 게 사업도 좋고 일도 좋지만 역시 이 바닥에서 구르던 사람은 연기를 해야겠다는 것”이라며 연기 생활 재기 의지를 불태우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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