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당시 독일은 세계최강이지” 선수시절, 독일에서 귀화 해달라고 직접 권유받았다는 한국축구 레전드
원조 빅리그 진출 1호, 분데스리가 진출 1호 전 축구선수 차범근 감독이 독일로부터 귀화제의를 받았다는 것을 털어놔 화제가 되었습니다.
최근 ‘EA SPORTS TM FIFA Online 4’ 유튜브 채널의 영상에서 ‘독일 귀화설’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그는 프랑크푸르트에서 축구를 하다가 은퇴한 후 독일에서 코치직을 제의받았다고 하는데요.
그러나, 차범근은 제안을 받아들이는 대신에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약속과 이행해야 할 임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차 감독의 임무는 1979년 독일을 떠나기 전 인터뷰에서 약속한 대로 젊은 축구인들을 훈련시키고 한국 스포츠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었습니다.
독일에 있는 동안, 한국 축구를 향상시키려는 차범근의 결심은 항상 그에게 남아있었습니다. 선수 생활이 끝날 무렵 아이들을 가르치겠다는 그의 결심은 독일 비자를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차범근 축구교실’을 설립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가 한국 축구 발전에 기여하기로 결정한 배경에는 1978년 일본컵에서의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는 한국 대표팀 선수들이 맨땅에서 연습하는 동안 50여 명의 일본 축구 청소년들이 푸른 잔디 위에서 훈련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당시 한국 축구가 일본 축구보다 우월했지만 차 감독은 한국 축구를 더 발전시키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한국의 이점을 곧 잃을 수 있다고 느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 어린 선수들을 훈련시킴으로써 축구 발전에 기여하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차범근 감독의 선수시절은 어땠을까요?
국가대표 130경기 출장, 56골 기록, 한국인 선수 최초의 센추리 클럽에 가입, 한국인 남자 축구 선수 중 역대 최다 A매치 득점 기록, 세계 최연소 센추리 클럽 가입(24년 139일), 독일 분데스리가 1부 리그에서 11년간 총 308경기 출장(당시 외국인 선수 중 역대 2위), 98골(당시 외국인 선수 중 역대 1위)기록.
참고로 분데스리가 98골 중 페널티 킥 득점은 0골입니다. DFB-포칼이나 UEFA 컵 기록까지 포함하면 372경기 121골. 차범근은 인터뷰에서 멀티골은 20번이나 해 봤지만, “해트트릭은 한 번도 못해봤다.”고 말했습니다.

1976년, 아시아에서 큰 국제대회이던 박스컵에서 말레이시아를 상대로 7분 남기고 1:4로 뒤진 상황에 차범근이 혼자 세 골을 몰아치는 해트트릭을 기록하면서 무승부를 만드는 기적을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방송국도 그 경기의 테이프가 없다고 했고 차범근도 두 골은 기억이 나지만, 나머지 한 골은 어떻게 넣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박스컵도 그렇지만, 1950년대~80년대 중반 이전의 국대 축구는 방송사에서 비디오 테이프와 필름을 비싸다고 재활용했던것이 당연시 되었기 때문에,
영상자료로는 영영 볼수없는 경기가 대다수이고, 문헌자료들은 영상자료에 비하면 낫지만 자료보존이 철저하지 못해서 차범근의 육체적 전성기인 20대 초반의 활약상은 직접 본 사람 외엔 아무도 모릅니다.

이렇게 현역 시절 자료가 부족하다 보니 자연스레 발생한 것이 포지션에 관한 논란이었습니다.
중앙 공격수였는지 아니면 윙어였는지 논란이 분분하였는데 차범근 본인의 말에 따르면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서는 주로 오른쪽 윙어, 분데스리가에서는 최전방 투톱으로 뛰었다고 합니다.
또한 현재 유럽에서도 지면 자료들의 인터넷 전산화가 어느 정도 진행되기도 하였고 유튜브의 활성화로 차범근의 플레이 영상을 몇 개 나마 볼 수 있기 때문에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구단에서 포지션 자체는 투톱 체제의 중앙 공격수로 뛰었지만 라인업 상 그렇게 표현되었을 뿐 현대에서 말하는 세컨드 스트라이커로서 활약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국가대표에서처럼 윙포워드로 출전하기도 했으며 말년에는 미드필더로 뛰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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